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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리우드의 '마더 돌로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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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의 '마더 돌로레스'

박용필 논설고문(LA중앙일보 논설고문, 2012.02.28)

두 눈은 퀭하고 목소리는 떨림이 잔뜩 묻어있었다. 삶의 마무리 여정에 접어든 노인이었으나 눈빛 만큼은 포근했다. 노인은 비슷한 또래의 수녀와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 두어 시간이 흘렀을까. 저녁기도를 알리는 종소리가 산자락에 울려퍼졌다. 이승에서의 마지막은 그렇게 빨리 찾아왔다.

 수녀는 느릿한 걸음으로 노인을 배웅했다. 현관문을 나서는 그를 향해 성호를 그었다. "주님 저 영혼에 자비를 베푸소서." 그러고는 눈물을 훔쳤다. "내 사랑했던 단…."

 지난해 12월 초 LA타임스는 유명 건축 디자이너인 도널드(단) 로빈손이 7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수녀가 만났던 바로 그 노인이다. 그 수녀가 26일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 할리우드 코닥극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대체 몇 년 만에 밟아보는 레드카펫인가. 수녀의 눈가는 촉촉히 젖어있었다.

 "저 수녀님이 엘비스 프레슬리와 첫 키스를 했다는 그 여배우?"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들렸다. 수녀의 이름은 돌로레스 하트. 1950년대 '청춘 스타'로 명성을 날렸던 배우다. '로큰롤의 황제' 프레슬리의 데뷔작 '러빙 유(Loving You)'에서 그의 연인으로 등장한 하트(사진 왼쪽)는 단박에 스타덤에 올랐다.

 지난해 숨진 로빈손은 스타들의 집을 설계해줘 할리우드에서 유명세를 탔다. 게리 쿠퍼의 세례식에서 대부가 될 정도로 스타들과 가까웠다. 그런 인연으로 하트는 로빈손을 만난 것이다. 연인 사이로 발전한 두 사람은 장래를 굳게 약속했다. 그러던 어느날 하트는 "당신을 사랑하지만 주님의 반려자로 살고 싶다"며 수녀원 입회 결심을 밝혔다.

 이후 로빈손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크리스마스가 되면 수도원을 방문해 하트와 '영성 교제'를 이어갔다. 그 역시 평생 독신으로 삶을 마감했다.

 하트가 가톨릭에 귀의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아씨시의 성 프란시스코' 촬영차 이탈리아에 갔을 때다. 영화에서 하트는 클라라 역을 맡았다. 귀족가문에서 태어났으나 프란시스코의 영향으로 수녀가 된 성녀다.

 교황 요한 23세를 알현한 자리에서 하트는 "제가 클라라 역을 맡았습니다"며 자기 소개를 했다. 교황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아닙니다. 당신 자신이 바로 클라라 입니다." 훗날 하트는 교황의 이 말이 자신의 영혼을 뒤흔들어놨다고 고백했다.

 화려한 생활에 익숙해 있던 20대 여배우에게 수도원 생활은 충격이었다. 하루 7번 묵상기도와 낮에는 종일 밭에 나가 노동을 해야 하는 '살가죽이 산 채로 벗겨지는 것' 같은 고통이 따랐다. 하트가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한 건 자신이 출연한 '신은 엘비스보다 크다(God Is the Bigger Elvis)'가 다큐멘터리 부문에서 후보작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는 제목에 엘비스 대신 '영성의 연인' 로빈손을 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영화를 만들게 된 것도 극적이다. 어느 주교가 일대기를 기록으로 남기자는 제안을 내놨다. 처음엔 "수녀가 무슨…"하며 거부했다. 며칠 후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케이블 방송 HBO에서 다큐제작 요청이 들어온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하트는 이런 말을 남긴다. "수도원 생활은 주님의 은총과도 같지요.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도 내 삶 속에 그분이 들어왔어요. 신은 엘비스 보다 훨씬 위대하답니다."

[인쇄하기] 2014-08-27 23:3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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