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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祖父 忌日을 맞아 할아버지를 추모 함
  

할아버지의 64주기 기일을 맞아...

3월 21일은 할아버지 기일이다.
1948년 3월 21일 선종하셨으니
금년으로 64주기를 맞았다.
할아버지의 함자(銜字)는 朴, 魯자 日자 이시다.
세례명은 바오로 이시다.

나는 할아버지를 비교적 일찍 여위었다.
내가 열살 때니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나는 일찍부터 할아버지에게 천자문을 배웠다.
할아버지 책상 옆에는 언제나 회초리가 한 다발 준비되어 있었다.
천자문을 배울 땐 항상 회초리를 옆에 두고 탁탁 치셨다.
한 눈 팔지말고 정신을 바짝 차리라는 뜻이였으리라...
그러나 내가 그 회초리로 맞은 기억은 없다.
초등학교에도 들어가기 전 나이에
천자문을 대 외우고 북을 잡고 쓰기도 배웠다.
이 실력으로 외가에 가면 모두가 둘러앉아 천자문을 외워보라고 했다.
외할아버지도 친구분들이 오면 나를 불러놓고 친구분들 앞에서 잘아을 하셨다.
친구분들은 천재 낫다고 칭찬을 하셨다.
외할아버지는 그것이 잫고 자랑스러우셨던가 보다.

나의 친할아버지에 관한 기억은 이것 뿐이다.
나중에 어른들에게 들은 바로는
나의 할아버지는 경북고보(경북중고등학교) 2회 졸업생이셨다.
일제 때 초등학교 교장을 지내셨다.
영양에서 교장으로 계실 때 이야기를 가끔 들은 기억이 난다.
당시로서는 귀하게도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이셨다.
할아버지가 쓰시던 스즈끼 바이올린이 아직 보관되어 있다.
대구 시민회관(옛 공회당)에서 발표회를 하신 사진도 본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사진이 長孫인 나에게는 없다.

교장을 하시다가 왜 그만 두셨는지는 모른다.
그후 생업을 위해 직물공장을 운영하셨다.
그 직물공장을 나의 선친께서 물려받아 운영하시다가 6.25 전쟁으로 문을 닫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계산성당에서 회장을 역임하셨다.
비산동에서 계산동 성당까지 매일 같이 새벽 미사에 참례하셨다고 들었다.
이것이 나의 할아버지에 대한 지식의 전부다.

나에게 남아있는 할아버지에 관한 느낌은 엄격하신 할아버지로 남아있다. 자상한 할아버지의 인상은 없다.
내가 좀 더 할아버지의 훈도를 받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할아버지의 기일을 맞아 할아버지에 관한 추억을 정리 해 보았다.
[인쇄하기] 2012-03-28 23:10:53 / 116.37.2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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